치유의 미학
더 깊이 바라볼수록 문제는 더 작아 보인다 본문
문제를 계속 지켜보라. 그럼 차츰 그것은 사라지기 시작한다. 계속 주시하라. 그럼 갑자기 그곳에 비어있음을 알게 된다. 아름다운 공이 그대를 둘러싸고 있다. 두려움이 찾아 올 때 마다 이것을 억누르지 말라. 억압지 말라. 피하지 말라. 이것을 잊어버릴 수 있는 일에 계속해서 관여 하지 말라. 아니다. 두려움이 찾아 올 때 마다 그것을 지켜보라. 그와 마주하라. 그와 조우하라. 그 속을 깊이 들여다보라. 두려움의 심연을 응시하라. 주시하고 보고 그대의 욕망을 지켜보는 것은 서서히 서서히 깨달음을 가져온다. 나는 사람들에게 조용하게 앉아서 그들의 생각을 주시하고 그들의 마음에서 빠져 나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나는 단지 말 없는 주시자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간섭하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대가 지켜보는 자가 됨으로써 그대가 알게 됨으로써 그대는 단지 그대가 육체가 아니라는 것을 마음이 아니라는 것 심지어 가슴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대는 그대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과는 다른 단순한 주시자이다. 지켜보라. 다만 주시하라. 지켜보면서 그대는 이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지켜보는 동안 결코 섣불리 판단하지 말라. 그대가 판단을 내릴 때 그대는 지켜보는 일을 놓치고 만다. 지켜보면서 의견을 내세우는 순간에 그대는 지켜보는 일을 놓치고 만다. 지켜보는 동안은 아무런 평가를 내리지 말라. 평가를 내리면 그대는 핵심을 놓치고 만다. 모든 방법 전 과정을 지켜보라. 그것은 성 에너지를 변형시키는 과정이다. 성으로 몰입하라. 그러나 명심하라. 무엇이 일어나든지 관찰하고 꿰뚫어 보라. 핵심을 놓쳐서는 안된다. 그대의 몸속에서 무엇이 가동하는지 그대의 마음속에서 무엇이 움트는지 그대의 내적 에너지에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지켜보는 것은 모든 것의 첫걸음이다. 길을 걷고 있을 때 자신을 지켜 볼 수 없다면 성 속에서라도 자신을 지켜볼 수 없다. 그대의 생각들을 지켜보라. 그리고 그 생각들과 동일시되지 말라. 단지 지켜보는 자로 남아라. 철저하게 무관심한 채로 찬성도 반대도 아닌 채로 판단하지 말라. 왜냐하면 모든 판단은 동일시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얼마나 그는 행복한가. 깨어 있음이 삶임을 보기 때문에 얼마나 그는 행복한가. 깨어난 자들의 길을 따르니.. 배워야만 하는 것은 지켜봄이다. 지켜보라. 그대가 하는 모든 행동을 지켜보라. 그대의 마음속에 지나가는 모든 생각을 지켜보라. 그대를 사로잡는 모든 욕망을 지켜보라. 심지어 모든 제스처도 지켜보라. 모든 것이 지켜볼 수 있는 하나의 기회가 되게 하라. 그대가 지켜볼 때 명료함이 나타난다. 왜 명료함이 지켜봄에서 생겨나는가. 왜냐하면 그대가 더 많이 지켜보게 될수록 그대의 모든 서두름이 점점 더 완만해지기 때문이다. 그대는 보다 우아해진다. 그대가 지켜보면서 그대의 재잘거리는 마음은 덜 재잘거린다. 왜냐하면 재잘거림이 되고 있었던 에너지가 방향을 바꾸어서 지켜봄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같은 에너지이다. 이제 점점 더 많은 에너지가 지켜봄으로 바뀔것이고 마음은 영양공급을 받지 못할 것이다. 생각들은 점 더 엷어지기 시작할 것이고 무게를 잃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생각들이 죽어가기 시작하면서 명료함이 생겨난다. 이제 그대의 마음은 하나의 거울이 된다. 얼마나 행복한가. 그리고 명료할 때 사람은 지복스럽다. 비참함의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혼란에서이다. 지복스러운 기반은 바로 명료함이다. 그대는 단 두 가지 길을 안다. 화를 내고 폭력적이 되고 파괴적이 되든지 아니면 그것을 억압하든지 둘 중의 하나인 것이다. 그대는 제3의 길을 알지 못한다. 그런데 그 제 3의 길이 붓다들의 길이다. 몰입하지도 억압하지도 말라 -지켜보라 뿌리는 오로지 그대가 그대 자신을 마음에서 분리시킬 때 그대가 너무나 각성하게 되고 너무 지켜보게 되어 그대가 마음을 그대와 분리 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을 때만이 잘려나간다. 마음과의 모든 동일시가 떨쳐 질 때 그리고 그대가 언덕위의 지켜보는 자 이고 마음은 계곡의 어둠속 깊은 곳에 남겨져 있을 때 그대가 햇살이 비치는 정상에 있을 때 보고 지켜보고 있으면서도 그 어떤 것과도 -좋든 나쁘든 죄인이든 성자든 이것이든 저것이든- 동일시되지 않는 순수한 지켜 봄 일 때 그 지켜 봄 속에서 모든 질문이 용해된다. 지켜보는 사람은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된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삶에 따라서가 아니라 자신의 빛에 따라 산다. 그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산다. 그리고 기억하라. 그대의 필요는 그다지 많지 않다. 만약 그대가 현명하게 지켜본다면 그대는 아주 만족스러운 그러면서 아주 단순한 그리고 작은 것들도 만족하는 삶을 갖게 될 것이다. 잘 지켜보면서 살라. 그러면 그대는 덫에 걸려들지 않을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살라. 그러면 한 걸음 한걸음 마다 그대는 덫에 걸려든다. 그대의 삶은 점점 더 구속이 된다. 그리고 그대를 제외한 그 누구도 책임은 없다. 바라보는 능력-그러면 그대는 신을 발견할 것이다. 들을 수 있는 능력. 그러면 그대는 그의 음악을 발견할 것이다. 나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나는 내안에서 신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나의 모든 노력은 그대가 안을 들여다보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유일한 문제는 언덕위의 주시자가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깨어서 관찰하라. 지켜보는 자가 되어라. 그러면 그대는 충족될 것이다. 주시자는 직접 참여하면서도 빈틈없이 깨어있는 사람을 말한다. 주시자는 삶에서 도망친 자가 아니다. 그는 훨씬 더 전체적이고 정열적인 삶을 살아간다. 그러면서도 깊은 곳에서는 지켜보는 자로 남아 있다. 그는 나는 의식이다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고 있다. 세상 속 에서 살아가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는 것 이것이 주시하는 의식이라는 말의 의미이다. 각성은 비 이원적이고 마음은 이원적이다. 그러니 주시하라. 한걸음만 뒤로 돌아서서 주시하라. 그대와 마음 사이에 거리를 두어라. 즐기고 싶은 장면이 지나가든 또는 추악한 장면이 지나가든 되도록이면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으라. 영화를 보듯이 지켜보라. 나는 마음을 멈추라고 권하지 않는다. 다만 마음을 이해하라고 말한다. 이해와 더불어 기적이 일어난다. 마음을 이해하고 그 원인들을 깊이 들여다보라. 그러면 깊이 들여다보는 그 시각 자체에 의해 원인들이 하나 둘 사라져간다. 서서히 마음이 가라앉는다. 그러나 지성은 상실되지 않을 것이다. 그대는 마음에 의해 어떠한 강요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음의 기능은 고스란히 살아남는다. 마음을 멈추려고 하지 말라. 마음이 제 속도를 내도록 놔두라. 다만 지켜보라. 그대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주시하는 것이다. 그대가 무슨일이지 하고 생각하는 순간 마음이 다시 밀려 올 것이다. 분석을 시작하면 다시 마음이 개입될 것이다. 주시를 제외하고 무엇을 하든간에 마음이 다시 밀려올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피해야 할 단 하나의 적이다. 그리고 주시는 마음이 침입할 수 없는 유일한 안식처이다. 주시하는 시간이 점점더 많아질것이다. 그리고 어느날엔가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날이 몰려올것이다. 깨어 있는 자에게는 공휴일이 없다. 만일 그대가 탐욕스럽다면 탐욕스러운 그 상태에 충실 하라. 탐욕을 없애려고 고심하지 말라. 만일 그대가 성적이라면 성적인 그 상태에 충실 하라. 성욕을 없애려고 애쓰지 말라. 그리고 지켜보라. 탐욕을 관찰하라. 성욕, 분노, 소유욕, 질투심을 관찰하라. 한 가지 명심할 것은 아무것에도 동일시되지 말라. 그저 관찰하라. 초연한 관찰자가 되어라. 관조한다는 것은 하나의 노력이 아니다. 당신이 관계하지 않고 있을 때 그 관조는 자연히 솟아오르는 것이다. 마음에는 무관심하게 있는 것이 좋다. 이곳에서의 나의 노력은 행복이 아니라 지복을 창조하기 위한 것이다. 행복은 아무 가치도 없다. 행복은 불행에 의존한다. 그러나 지복은 둘 다를 초월한다. 지복으로 충만한 사람은 행복과 불행이라는 이원성을 초월한다. 그는 양쪽 모두를 주시한다. 행복이 오면 그는 행복을 주시할 뿐 거기에 동요되지 않는다. 그는 나는 행복하다. 또, 이 고요한 평화. 참으로 훌륭하도다. 하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주시하면서 그래 지금 흰 구름이 지나가고 있다고 말할 뿐이다. 그 다음에 불행이 와도 그는 거기에 동요되지 않는다. 그는 검은 구름이 지나가는구나. 나는 주시자. 지켜보는 자이다 하고 말한다. 지켜보는 자가 되는 것. 이것이 명상의 전부이다. 섹스를 하면서 주시하라. 섹스에는 아무런 나쁜 점도 없다. 섹스를 하면서 몸의 움직임 전체를 주시하라. 에너지가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주시하라. 에너지가 어떻게 아래로 내려가는지 주시하라. 오르가슴을 주시하라. 두 육체가 어떻게 하나의 리듬으로 움직이는지 주시하라. 심장 박동을 주시하라. 심장 박동이 점점 빨라져서 거의 미칠 것 같은 상태가 온다. 몸이 뜨거워지고 피가 더 왕성하게 순환하는 것을 주시하라. 호흡을 주시하라. 숨이 거칠어진다. 그대의 조절 능력에 한계가 오고 모든 것이 주체할 수 없게 되는 것을 주시하라. 일정한 지점을 넘어서면 다시 돌아오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이 순간을 주시하라. 육체가 자동적으로 움직이고 모든 조절 능력이 상실된다. 사정하기 직전에 그대는 통제능력을 잃는다. 육체가 지배권을 행사한다. 이것을 관찰하라. 이 모든 과정을 주시하라. 그대가 통제권을 가지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일정한 지점을 넘어서면 다시 돌아오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육체가 그대를 완전히 장악한다. 그대는 통제력을 잃는다. 이 모든 것을 주시하라. 여기에 수많은 일이 일어난다. 섹스만큼 복잡한 것은 없다. 몸과 마음 전체가 섹스에 빨려들기 때문이다. 오직 주시자만이 거기에 빨려들지 않는다. 이 주시자는 항상 내부에 남아 있다. 사념 없이 탐구하라. 바라보라. 그대의 맑은 눈으로 그저 바라보라. 어떤 특별한 것을 찾지 말아라. 그저 보라. 사람에겐 두 부류가 있다. 마음을 따르는 사람들 그들은 마음을 실재로 취급한다. 마음과 싸우거나 마음을 피하는 사람들 그들 역시 마음을 실재로 취급하는 것이다. 마음은 따를 필요도 없고 싸우거나 피할 필요도 없다. 그 안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것이 필요한 것의 전부이다. 깊숙이 들여다보라. 인생의 가장 위대한 체험은 죽음을 지켜보는 것이다. 지켜보라. 삶의 매 순간 지켜 봄을 체험하라. 아픔과 즐거움 그 일체를 사랑과 미움 그 일체를 선과 악 그 일체를 자꾸 지켜보라. 지켜 봄의 맛.